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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리뷰 #2

altair823 2021. 12. 5. 13:13

오징어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번 글(https://altair823.com/5)에서는 화면에 보이는 시각적인 것들을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게임의 진행 과정에서 눈에 띄었던 것들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협력

 저는 개인적으로 장덕수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많은 관심이 갔습니다. 어쩌면 조상우보다 더 성기훈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성기훈이 혼자 쓸쓸히 않아있는 오일남에게 손을 내밀 때 장덕수는 한미녀를 차갑게 내칩니다. 성기훈은 방어하는 그룹에 속하지만 장덕수는 약탈자 그룹에 속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기훈은 협력하고 장덕수는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덕수가 그룹을 만든 것은 남을 약탈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신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계약만이 존재할 뿐이죠. 

 

 장덕수를 보면서 저는 팃포탯(Tit-for-Tat)실험이 떠올랐습니다. 팃포탯은 연속적인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살아남는 가장 좋은 전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의 팃포탯에 대한 동영상

 

 죄수의 딜레마 게임과 팃포탯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팃포탯은 '협력자에게는 협력을, 배반자에게는 응징을'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죄수의 딜레마 게임은 각 플레이어들에게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연속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팃포탯을 실험해보고 싶다면 아래의 링크로 들어가서 직접 실험해 볼 수 있습니다. 

 

 

The Evolution of Trust

an interactive guide to the game theory of why & how we trust each other

ncase.me

 

 요약하자면 팃포탯은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연속적이고, 서로의 의사가 정확히 전달되며, 배신의 이익이 지나치게 크지 않을 경우에만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게임이 단 한번만 진행된다면 누가 협력을 선택할까요? 단 한번의 패배가 너무나 치명적일텐데요.

 

 상대의 배반에 무조건 보복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실수를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람이 만나 한 번이라도 실수를 저지른다면 둘은 끝없는 배반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신의 이익이 몇 번의 협력을 포기할만큼 가치있다면 또한 협력의 고리는 끊어지기 쉽습니다. 

 

팃포탯의 특징은 따라서 다음을 의미합니다. 팃포탯은 항상 상대의 선택을 따라합니다. 이것이 말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명확해 오히려 상대방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하죠.

 

'당신이 협력한다면 나도 협력하겠다. 그러나 배신한다면 나는 보복하겠다.'

 

 고민 끝에 상대가 선택해야 할 수는 명확합니다. 만약 배신을 선택하면 팃포탯은 반드시 보복합니다. 하지만 협력을 선택하면 팃포탯은 또한 반드시 협력합니다. 뒤통수를 쳐 놓고 한 번만 봐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항상 협력할 것처럼 속이다가 배신을 선택해도 보복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은 다음으로 요약됩니다. 

 

'같이 죽을래, 아니면 같이 이길래?'

 

 플레이어 입장에서 최악의 수는 상대가 이기는 것이 아닌 내가 죽는 것이니, 결과적으로 팃포탯과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협력의 순환을 만들어야 하죠. 

 

 저는 장덕수를 보면서 팃포탯이 자꾸만 떠올랐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상황에서 파트너를 배반합니다. 사회에 있을 때는 윗 사람의 돈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고, 줄다리기 조를 짤 때는 한미녀를 내쳤습니다. 솔직히 오징어 게임 같이 다음 게임이 불투명하고 단 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그의 최후가 결국 보복의 결과임을 고려하면 우리가 어째서 배신이 아닌 협력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면 가끔 배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가깝게는 현실에서도 배신을 하거나 당하기도 합니다. 배신했을 때 얻을 이익이 협력보다 충분히 크니 그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의 죄수의 딜레마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끝을 알 수 없는 횟수의 게임을 반복하지요. 우리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와 게임합니다. 다시 보지도 않을 사람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인터넷 상의 거친 말들은 다시 봐야할 사람에게는 협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배신한 상대에게 보복한 이야기들은 통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협력의 이야기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는지도 모르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저들이 먼저 내 뒤통수를 쳤으니, 이번에는 내가 저들에게 보복할 차례라고. 

 

 팃포탯은 이에 마지막으로 교훈을 줍니다. 팃포탯의 맨 처음 선택은 항상 협력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상대가 협력을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그 이전에 몇 번을 배신했고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던 간에, 상대가 협력을 선택한다면 팃포탯 또한 협력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갈등이 배반-보복의 고리를 끊고 먼저 내미는 협력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성

 1편에서 언급했던 밴 샤피로에게 제가 가장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가 감독의 마지막 메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인간이라는 존재는 시체에서 장기를 빼내고, 남을 낭떠러지로 밀어버리고, 돈에 눈이 멀어 손에 피를 묻힙니다. 조상우와 성기훈의 마지막 대결은 추악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합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에서 정말 대결하는 인물은 성기훈과 오일남입니다. 단지 오일남이 숨겨진 나쁜 놈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도 사람을 믿나?'라는 대사로 대변되는 그의 사상과 성기훈의 인간성의 부딪힘 때문입니다.

 

오일남은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을 인간 쓰레기로 봤을 것입니다. 노숙자를 보고도 그랬으니까요. 죽음의 문턱에서 보인 참가자들의 추태는 또 어떻고요. 오일남이 설계한, 그리고 감독이 구상한 오징어 게임은 게임 그 자체보다는 인간이 죽음이라는 거대한 두려움 앞에서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기훈에게도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너는 너의 파멸을 감수하고서도 약자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느냐?

 

 오일남이 오징어 게임을 만든 표면적인 이유는 '재미'이지만 제 생각에 진짜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간성을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남을 배신할 수밖에 없는 게임 속에서 서로를 배신하는 나약한 인간 쓰레기들을 보며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성기훈과의 마지막인 구슬치기 편도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게임 전 구도도 절묘합니다. 평생 남을 배신하며 살았지만 지영의 희생으로 구원받은 새벽. 가장 밑바닥에서도 길고양이에게 생선을 나눠주던 착한 사람이었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를 경험하고, 오일남의 희생으로 다시 구원받은 성기훈. 이 둘의 반대편에서는 가장 평화적인 그룹의 리더였지만 살아남기 위해 배신, 그리고 살인까지 저지른 조상우가 대립합니다. 희생으로 인간성을 구원받은 둘과,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한 괴물의 대립입니다. 

 

 성기훈은 마지막 순간, 오징어 게임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그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칼을 내리찍었던 상우에게 손을 내밉니다. 자기가 파멸할지라도 마지막까지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게임에 집중하는 대신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다양한 갈등을 그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내고 우승을 쟁취해내는 영웅의 이야기는 더 이상 신선하지도 않고 딱히 와닫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머니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경마장에서 낭비하고 온갖 사채에 시달리던 기훈이, 고난과 역경 끝에 선택한 것이 우승이 아닌 인간성이라는 이야기는 정말로, 정말로 마음에 와닫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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