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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리뷰 #1

altair823 2021. 10. 26. 01:14

오징어 게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오징어 게임>이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기생충의 인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히 코리안 신드롬이라 할만하군요. 

 

 얼마 전, 흥미로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와 같은 소셜 미디어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미국의 우파 정치 평론가, 밴 샤피로가 오징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오징어 게임을 리뷰한 밴 샤피로의 유튜브 영상

 

 대강 요약하자면 드라마가 돈이 많은 VIP들은 더럽고 추악한 모습을, 돈이 없는 가난한 참가자들은 고결함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VIP들은 모두 서양인들이며, 프론트맨은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며 고상하게 앉아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서양 자본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했고 사회의 부조리함은 서양 기업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해당 영상의 댓글들부터 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국내 커뮤니티들은 물론이고요. 하지만 제가 놀랐던 점은 이런 엉뚱한 리뷰가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이 드라마를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서양인들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째서 그들이 그런 시각으로 오징어 게임을 경험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감독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제 나름의 생각을 써봅니다. 

 

 

미적 요소

 현대 미디어에서 미적인 요소는 재미와 완성도, 메시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합니다. 감독이 한 장면에서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1. 옷

 

 오징어 게임에서 모든 참가자는 초록색 체육복을, 모든 관리자와 병정, 일꾼들은 빨간색 점프슈트를 입고 있습니다. 

 

 

 그 두 보색을 대비하는 효과는 포스터에서부터 분명히 보여집니다. 감독은 두 그룹을 명확하게 갈라놓습니다. 참가자는 참가자일 뿐 절대로 관리자, 병정, 일꾼과 섞일 수 없습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고요. 경찰 황준호가 주최측에 섞여들어가기 위해서는 참가자가 아닌 일꾼의 옷을 빼앗아야만 합니다. 

 

 두 번째 효과는 익명성입니다. 참가자는 서로가 누구인지, 사회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가족은 몇 명인지와 같은 정보를 알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정보는 오직 게임을 진행하면서 바라본 서로의 모습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기만할 수 있습니다. 상우는 '믿을 만한 사람'을 연기할 수 있었으며, 가장 가까웠던 조직원까지 자신을 배신할 만큼 조직에게 신의를 잃은 장덕수는 뻔뻔하게 약탈자 그룹의 리더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부 등장인물들의 사적인 관계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인 초록색 체육복과 번호는 그들에게 원시적인 관계를 제공합니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말이죠. 장덕수는 가장 힘이 세지만 뒤통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남들이 모르는 만큼 자기도 남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기 때문이니까요. 사기 전과 5범 한미녀는 자기를 믿어달라며 호소하고, 홀짝도 못하면서 선물을 한 조상우는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가 됩니다. 요약하자면 참가자들은 오징어 게임 안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속이는 것이라 해도. 

 

홀짝도 못하는 놈이...

 

 주최측 인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은 그들이 개미때처럼 보이길 원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어떤 누구도 주최측 인원들의 신변을 알 수 없습니다. 어제 내 파트너를 죽인 놈인지, 아니면 죽은 내 파트너의 장기를 꺼낸 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경찰 황준호를 29번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장기밀매를 계획한 그들조차 서로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드라마에서 병정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마치 세 명의 사형 집행인이 동시에 세 버튼을 누르는 모습 같았습니다. 어떤 버튼이 진짜 버튼인지 모르고 누가 결과적으로 사형수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참가자들과 다른 병정들도 어떤 병정이 누구를 죽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일본에서 공개한 사형 집행실. 세 명의 집행인이 각 버튼을 누른다. 이 중 작동하는 버튼은 하나뿐이다.

 

 익명 사용자로 로그인했을 때 악플을 달기 더 쉬워지듯이, 병정들은 병정 옷을 입고 병정 마스크를 썼을 때 방아쇠를 당기기 더 쉬워집니다. 그 순간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닌 '병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면이 벗겨지고 병정에서 사람이 된 관리자를 프론트맨은 죽여야 합니다. 병정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익명성 뒤에 숨어 망설임 없이 주어진 일(설령 살인이라도)을 수행하는 개미가 되어야 합니다.

 

 가면을 쓰고 점프슈트를 입고 있는 한 그들의 의사는 존재하지 않고 오직 조직의 의사만 존재합니다. 그들의 책임도 없으며 방아쇠는 그들의 손가락이 아닌 조직의 손가락이 당깁니다. 각 관리자, 병정, 일꾼은 인간으로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마치 거대한 유기체의 한 부분처럼 올바르게 '작동'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주최측 인원들의 가면은 신분을 나타냅니다. 호스트와 VIP들은 금색 동물 가면을, 프론트맨은 검은 가면을, 관리자는 네모, 병정은 세모, 일꾼은 동그라미의 가면을 써야 합니다. 

 

 예로부터 의복은 그 사람의 사회경제적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습니다. 왕은 곤룡포를, 신하는 관복을 입고, 돈 많은 양반은 갓을, 가난한 평민은 벙거지를 썼습니다. 물론 반드시 그렇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류가 의복을 만들어 입은 순간부터 신분과 의복은 땔레야 땔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분 체계가 사회에 존재해 왔고 오징어 게임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시스템을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쉽사리 저항할 수 없는 규칙을 만들어 냅니다. 그럼으로서 오징어 게임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해줍니다. 

 

2. 원색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소품은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습니다. 물론 정확히는 원색이 삼원색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의류에서 쓰듯 빨주노초파남보의 색상과 채도와 명도가 높은 색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겠습니다. 

 

많은 영화에서 원색의 소품은 동심을 상징합니다. 

 

 

 어린 아이의 기억과 억압된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 IT에서도 원색의 소품들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으로 포스터에서도 보이는 아이의 우비와 페니와이즈의 풍선입니다. 둘은 그 자체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뜻하죠. 

 

 알라딘이나 인어공주 같은 디즈니 만화 영화도 대체적으로 강렬한 색을 많이 사용합니다. 오징어 게임에서 배경과 체육복은 이처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어린 시절의 경험을 상징하고 감독은 이를 어른들의 냉혈한 현실과 대비시킵니다. 놀이터에 있는 빨간색 그네에는 총에 맞아 죽은 탈락자의 빨간 피가 흘러내립니다. 

 

 다섯가지 게임의 룰은 매우 간단합니다. 룰에 대한 설명은 몇 문장이거나 아예 없기까지 합니다. 마지막 게임이 조금 복잡하기는 하지만 결국 외나무 다리에서 싸우는 두 남자만 남겨집니다. 게임의 룰들이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으니 이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1. 간단함

2. 명료함

3. 평등하다는 환상

4. 패자부활전의 부재

5. 승자 독식

 

 밴 샤피로가 말했듯이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를 우화적으로 그리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게임의 룰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규칙이 매우 분명하고 간단함을 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누구도 자본주의의 규칙을 숨기지 않습니다.

 

 영희가 돌아볼 때 움직이지 않고, 달고나를 깨뜨리지 않으며, 상대편보다 줄을 세게 당기고, 파트너의 구슬을 모두 뺏어오면 됩니다. 물론 상대를 속여 구슬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구슬을 20개 모아야 한다는 규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평등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명료함은 간단함과는 다릅니다. 간단함이 이해하기 쉬움을 뜻한다면 명료함은 그 보다는 마치 법처럼 분명함을 뜻할 겁니다. 그 누구도 게임의 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탈락자의 장기 적출은 신경쓰지 않지만 게임의 룰을 어길 때는 보복이 뒤따릅니다. 누구도 룰에게 자비를 구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한 순간 손이 떨려 달고나를 깨뜨렸건, 내가 죽여야 할 사람이 아내이건 간에 룰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룰은 절대적이고 변하지 않습니다. 이 점도 자본주의와 비슷해 보입니다. 

 

 참가자들에게 서로가 평등하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우산을 골랐다는 것이 더 어려운 달고나를 받을 만큼 잘못된 선택이었나요? 마지막에는 주체적으로 살고 싶어서 1번을 선택한 남자는 제일 먼저 징검다리를 건너야 할 만큼 잘못했나요? 사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평등한 게임은 몇 없습니다. 단지 참가자들이 그것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과정을 정당화할 뿐이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남았습니다. 바로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것과 모든 상금은 오로지 승자가 독식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징어 게임 속에 사회 비판적인 요소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한번의 잘못된 선택이, 심지어 그렇게 잘못되어 보이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이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옵니다. 엄마는 더 이상 저녁 먹으라고 부르지도 않고, 패배를 오롯이 스스로 떠안아야 합니다. 감독은 패자부활전이 없는 게임이 얼마나 잔인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였건 간에 한 번 징검다리 밑으로 떨어진 사람은 다시 올라올 수 없습니다. 

 

 모든 참가자의 목숨값 456억은 오롯이 성기훈의 몫이 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아무리 아깝게 살아남지 못했다 하더라도 탈락한 그 순간 모든 것을 읽어야 했다는 점이 게임과 세상의 잔인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기훈이 그 돈을 받은 이유가 능력이 뛰어나서도, 탁월한 선택을 해서도 아닌, 단지 운이 남들보다 조금 더 좋아서라는 점이 결과의 허무함을 가중시키네요. 결국 성기훈에게 남은 것은 오랜 고향 동생까지 죽이고 얻은 빈 껍데기 같은 허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오징어 게임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 특징들을 짚어봤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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